관객과의 대화 GV 2024.07.05. fri.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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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의 섬> 감독 최승현 <쎄이 썸띵> 감독 오지인 <부러지고 싶은 마음> 감독 이효정
모더레이터 씨네21 기자 조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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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안녕하세요. 오늘 GV 진행을 맡은 씨네21 조현나 기자입니다. 반갑습니다. 다들 영화는 재밌게 보셨나요? 오늘은 '벗어던지다' 라는 주제로 세 편의 영화 보셨는데요. 궁금한 점이나 나누고 싶은 감상이 있으시면 잠시후에 이야기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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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첫 질문은 세 분께 공통으로 드릴게요. 이번 영화 어떻게 연출하게 되셨는지, 구상은 어떻게 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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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영아의 섬>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한 영화인데요. 영화에 출연한 할머니 배우분이 제 친할머니세요. 저희 할머니가 실제로 사륜 바이크를 타고 다니시는데 제가 굉장히 타고 싶어 했어요. 어렵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데 할머니가 절대 안 태워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어렵게 뒷자리에 탔었던 그 때의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을 보고 할머니가 손녀에게 태워주고 싶지 않은 이유를 고민을 하다가 제 나름대로 이야기를 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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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극중에 키가 크는 것을 벽에 잰 낙서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건 누구의 키를 재셨던 건가요? 감독님의 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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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원래 할머니 집에는 없었지만 설정상 영아의 키를 잰 것으로 미술팀 선생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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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진짜 감독님의 할머니댁인 것 같아서 감독님의 키일까 혹은 다른 사람의 키일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오지인 감독님 이어서 말씀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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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저도 최승현 감독님처럼 제 경험에서 출발 했어요. 어렸을 때 했던 가장 특이한 경험이 방언 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봤던 건데요. 저는 방언을 할 줄 모르는데 방언하는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었어요. 제가 뉴욕에서 영화 공부를 시작했는데, 뉴욕 사람들이 미국인들 중에서도 말이 빠르고 억세거든요. 그래서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제가 그들만큼 영어를 빨리 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 상황이 마치 어렸을 때 방언하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던 경험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이야기를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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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저도 경험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영화의 사건이 진짜는 아니었고 저는 자기 구원이 셀프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 영화 속의 일이 내가 아니라 친하고 가까운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한테 일어났을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글로 쓰고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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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각자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영화로 만들어서 몰입이 잘 됐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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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이효정 감독님께 이어서 질문드릴게요. <부러지고 싶은 마음>은 강의 입장을 따라가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여진의 입장을 모르겠는 건 아니었어요. 여진이 장애를 얻고 나서 느끼게 되는 공허함이나 절망 같은 것들이 잘 녹아들었다고 느껴졌거든요. 감독님께서 두 인물의 감정선을 드러내기 위해서 어떤 점을 주안점으로 두셨는지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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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사실 저는 만든 사람 입장에서 잘 드러나는지가 의문이었어요. 보면서 지금 잘 드러나고 있나, 너무 숨기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잘 드러났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하자면 여진이가 주인공인 영화는 많다고 생각 했어요. 절망을 겪은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는 많은데, 이 이야기는 강의 입장에서 진행이 돼야 가치 있을 것 같다고 생각 했어요. 계속 강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사실 강이는 리액션을 하는 사람이고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거든요. 어떤 것을 보여준다기보다는 그 마음을 머금고 있는 순간을 그냥 담아내고자 했어요. 그래서 혼자 생각에 잠긴 얼굴들을 포착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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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저는 여진이가 멍하게 앉아 있거나 밖을 쳐다보는 장면들이 좋았고, 강이는 불안함이나 여진을 계속 살피는 태도 같은 것들이 잘 표현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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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쎄이 썸띵>에서 좋았던 장면은 역시 드럼 리듬에 맞춰서 예은이가 방언이라고 해야 하나요? 외운 방언을 내뱉는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을 현장에서 어떻게 디렉팅 해 주셨는지 에피소드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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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그 장면이 은유하는 것이 있잖아요. 그걸 제가 직접적으로 배우들에게 말을 했어요. 그리고 캐스팅을 할 때부터 두 배우가 편하게 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은 역의 하나 배우와 드러머 역할의 행크 배우가 실제로 사귀는 사이에요. 장면 특성상 단계를 나누어서 디렉팅을 했는데, 그 단계마다 끊으면서 진행을 했어요. 색 보정할 때도 얼굴에 홍조를 많이 띄워달라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했었어요. 현장은 그저 너무 재밌었고 다 같이 깔깔 웃으면서 컷 소리 날 때마다 모두 뒤집어지면서 촬영했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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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그러면 하나 배우가 먼저 캐스팅 된 다음에 남자친구와 함께 해볼까 해서 캐스팅이 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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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네. 우선은 뉴욕에서 하나 배우처럼 한국어와 영어 둘 다 잘하는 사람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예은 배우가 뉴욕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시는 분인데 캐스팅하게 되었고 그 후에 누구를 해야 하나 하다가 남자친구 분도 함께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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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그런 케미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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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최승현 감독님께 주인공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 들어보고 싶은데요. 영아가 서울행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로 느껴졌어요. 연출자 입장에서는 그런 심리를 표현할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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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저는 영아가 미련이 많고 잊는 것을 무서워하는 친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묘지에서 발견한 작은 목걸이도 그 친구에게 중요하고 예쁜 물건이었을 거에요. 절친인 효진이와 만든 공간도 어떻게 보면 버려지거나 남겨진 것들을 모아서 새로 의미를 부여해주고 생명을 준 공간이고요. 그렇게 자기만의 세계를 쌓아가는 아이여서 미련도 많고 사랑도 많아요. 자신이 속해있고 만들어 둔 이 세계를 떠나야 할 수 도 있는 상황에 "이제 모르겠어 할머니"라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본인도 혼란스럽고 모르겠는 마음이지만 그래도 정이 많고 천천히 볼 수 있는 아이라는 성격을 부여해 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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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두려워하는 느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하는 감정이 느껴져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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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이효정 감독님께 캐스팅 이야기 여쭤보고 싶은데요. 전작 <희지의 세계> 때 전도희 배우님과 함께 하셨었잖아요. 이번에도 같이 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하고 또 강역의 이하은 배우님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셨는지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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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전작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지의 세계>는 지금 왓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전도희 배우님은 학교 선배님이세요. 연기를 정말 잘하시고 저와 호흡을 맞춰본 적도 있고 최근에 <마이디어>라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받은 작품에서 청각장애인 연기를 하셨어요. 그 작품에서도 너무 잘 하시고 아무래도 장애에 대한 소재를 다루다 보니까 막연하게 잘해주실 거라고 생각해서 캐스팅을 했고요. 이하은 배우님은 아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찾아보실 수 있는 배우님이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친구이자 선배 그리고 배우라서 꼭 한번 작업을 해봐야겠다하고 전화로 꼬셔서 캐스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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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최승현 감독님, 친할머님께 함께 하자고 하셨을 때 바로 승낙을 하셨는지 또 촬영 같이 해보시니까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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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사실 처음부터 저희 친할머니를 캐스팅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오디션을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노년 배우분들이 많이 계시지는 않으니까 프로필 자체가 많이 안 왔어요. 감사하게도 보내주신 분들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다들 도시 할머니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할머니께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렸는데 할머니께서 흔쾌히 '까짓 것 하지 뭐' 그러셔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테스트 촬영과 리딩을 남해로 내려가서 촬영을 했는데 할머니께서 떨지 않고 있는 대로 잘 해주셔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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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굉장히 쿨하게 승낙을 해 주셨군요. 역시 영화에서도 보통 분이 아니라고 느꼈는데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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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오지인 감독님 <쎄이 썸띵>은 미술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교회가 또 중요한 공간이라서 색감 설정 같은 것들을 어떻게 해나가셨는지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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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이 질문을 진짜 많이 받았는데요. 사실 촬영장에 미술 감독이 없었어요. 그리고 구할 수 있는 교회도 한정적이었어요. 빌려주려는 공간도 없었고 한인 교회라는 설정인데 저렇게 예쁜 한인 교회가 뉴욕 맨해튼에 있을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괜찮다고 한 교회가 한 곳 뿐이어서 저도 처음에는 너무 파란 거 아니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했어요. 그런데 교회를 정하니까 PD분들이 예은이가 마지막 부흥회를 갈 때는 좋아하는 오빠가 있는 상태니까 분홍색 옷을 입어볼까 하는 의견을 주셨고, 색감이 하나 정해지니까 스태프들이 용기라고 하면 과할 수 있는데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의견을 많이 주셔서 그렇게 콜라보레이션으로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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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저는 당연히 입힌 색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원래 그런 교회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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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네. 운이 좋게 화장실도 핑크핑크하고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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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배경 때문에 예은이의 분홍색이나 노란색 옷이 눈에 잘 들어와가지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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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영아의 섬>에서 새벽녘이나 노을이 지는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대를 잘 활용 하셨다고 느꼈거든요. 그 시간대를 선호하셔서 그렇게 촬영하신 건지 아니면 날씨나 어떤 운이 따라준 건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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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첫 장면에서부터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색감을 많이 가져가려고 노력 했어요. 원래는 노을이 지거나 아침이 오는 시간대 별로 차이가 극명하게 보였으면 하는 게 바램이었어요. 저희가 1년 전쯤 7월 말에 촬영을 했는데요. 4월부터 날씨를 살폈는데 결국 저희가 촬영하는 3일 내내 비가 왔어요. 비가 안 오는 1시간 후다닥 촬영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안개가 끼고 눅눅한 느낌이 오히려 영화에 잘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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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맞아요. 흐린 날씨가 오히려 극의 분위기랑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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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부러지고 싶은 마음>은 강과 여진 두 명이 극을 끌고 나가는 작품이라 현장에서 두 배우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캐릭터에 관해서도 어떻게 정해나갔는지 얘기해 주신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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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1월에 촬영했는데 배우님들이 알아서 잘해주셨다고 하면 너무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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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러면 배우님들 자랑을 해주신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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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도 그리고 연출하면서도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화장실 씬이었어요. 사실은 화장실 씬만이 아니라 집에 들어와서부터 "너 죽고 싶니?" 하고 스스로 뺨을 때리다가 물을 뿌리고 화해하고 울고 이런 것들이 감정이 다이나믹하게 왔다 갔다 하니까 배우들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 했어요. 이하은 배우님이 연기한 강이가 길게 말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붕어빵도 먹고 속초도 가고 하는 그 부분이 사실 촬영장에서 그 대사까지 찍는 컷이 아니었거든요. 그냥 자리에 앉으면 제가 컷을 했어야 되는데 배우님이 "내일 나랑 붕어빵 먹어" 대사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뭐지 왜 하시지' 생각을 했다가 너무 좋아서 끊지 않고 진행했어요. 예상치 못한 호흡을 끝까지 다 하신 거예요. 그리고 카메라 감독님도 합의가 안 된 부분이라 어떻게 찍을지 몰라서 당황하실 수 있는데 자연스럽게 쓱 찍어주셨고, 포커스 하시는 분도 포커스를 자동으로 돌려주셨어요. 이건 내가 감독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모든 게 잘 맞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하면서 무조건 이 컷을 써야겠다 했어요. 그 장면이 핸드헬드로 찍혀서 여진이 장면도 핸드헬드로 계획을 바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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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그런 계획하지 않는 장면들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영화 현장에서 제작진들만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인 것 같아요. 그 순간을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장면이 지금 저에게도 조금 다르게 와닿는데 관객분들께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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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쎄이 썸띵>에서 아역의 연기도 너무 좋았어요. 캐스팅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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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아역이 한명은 꼭 필요했고 그리고 다른 아역들은 섭외한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이었어요. 사실 섭외하기 위해서 그 교회를 좀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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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네. 엄마, 아빠가 교회 다니세요. 제가 유학생활 중에 교회를 다니지는 않았는데 조금 다니면 장소를 빌려줄 것 같은 목사님의 제스쳐가 있으셨어요. 그래서 몇 주 나가다가 아이들과 친해지고 영화 나와볼래 해가지고 모든 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됐었고, 아역 배우는 그레이슨이라는 이름의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중국계 배우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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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예은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배우 말씀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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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네. 종이 찢는 악역, 악역이라고 해야될까요? 그 친구는 그 당시에 저보다 영화를 더 오래 한 선배였어요. 저는 시작한 지 이제 겨우 2년 됐는데 그 친구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나오는 영화에도 출연했어요. 제가 세트장에서 선배님 모시듯이 저한테 세트장에는 이 과자가 이렇게 있어야 된다고 알려주셨어요. 간단한 한국어 대사들은 제가 알려드리기도 하면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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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장소 섭외를 위해서 몇 주 다니신 거 치고는 수확이 엄청 좋았던 거 아닌가요? 현장에서의 꿀팁부터 많은 걸 얻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마이크를 관객석으로 돌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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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1 영화 3편 다 잘 봤습니다. <부러지고 싶은 마음>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어요. 여진이와 강 말고 연하라는 인물이 또 나오는데 저는 그 세 명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아서 좋았거든요. 여진과 강이 어떻게 보면 사랑하는 사이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친구와의 사랑도 타인의 삶을 구할 수 있잖아요. 그 세 명의 관계를 명확하게 그리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아니면 우연인 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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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예전에 이 시나리오를 처음 썼을 때 사실 여진이가 남자였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고 했을 땐 보편적으로 이성 커플이 읽히기 쉬울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디벨롭 과정에서 그 방향이 제가 원하는 대로 읽히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내 남자친구가 장애인이 됐는데 난 어떡하지 이런 식으로 읽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그러면 친구,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사랑을 다뤄보자 하고 바꿨던 건데요. 사실 연하는 원래 그 남자 선배를 동경하고 사랑하는 남자 후배였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여자와 여자로 바뀌면서 연하는 그대로 남게 되었어요. 저는 연하라는 사람이 강이 모르는 육상생활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여진이 이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집에 올라오기 힘든데 남자 후배에게 업혀서 올라왔을 때 기분이 어떨까? 생각했어요. 고맙기도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들이 유효할 것 같아서 그대로 남자로 남겨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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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2 오지인 감독님께 질문하고 싶은데 주제 '벗어던지다'처럼 예은이가 목사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욕망을 위해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요. 예은이가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인정과 소속감을 느끼려고 하는 부분이 감독님께 자전적인 의미가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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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네. 저도 이 영화를 설명할 때 소속감이라는 키워드를 뺄 수 없을 것 같아요. 저의 다른 영화들도 소속감이라는 부분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고요. 인상 깊었던 코멘트가 함께 유학을 하던 친구에게 영화를 보여줬는데 슬프다는 거예요. 본인이 속하기 어려웠던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게 유학생들이 보기에 그 부분이 강조되어서 보였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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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3 <영아의 섬>에서 영아가 할머니가 주무시는 밤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잖아요. 섬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투영한 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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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영아가 늘 뭔가 답답한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섬은 아무래도 육지보다 즐길거리가 적잖아요. 그래서 해소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전거를 무작정 타는 그런 아이인데, 사륜 바이크가 아무래도 더 빠르고 흥미로워 보이니까, 마음도 답답한데 좀 더 빠른 걸 타볼까 하는 마음일 것 같아요. 바이크를 타고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요. 그냥 혼란스럽고 세계가 확장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마음을 1차원적으로 무엇이든 해봐야겠다 이렇게 표현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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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4 먼저 <영아의 섬>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은 것은 작품의 화면비가 남달랐는데 넓은 화면 안에 담기는 풍경이 좋았어요. 그 화면비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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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우선은 그 화면비(21:9)가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면비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촬영 감독님과 이야기를 했을 때 저는 영화를 이번에는 서울에서 찍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어서 남해에 마음이 기운 것도 있는데요. 아무래도 서울이나 실내의 한정된 공간에서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화면비라고 생각해요. 근데 남해는 로케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고 지금이 아니면 제가 좋아하는 화면비를 못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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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4 <부러지고 싶은 마음>은 영화 처음 시작할 때 두 사람의 친구들이 약간 강을 원망하는 눈빛으로 본다고 느꼈는데 혹시 맞는지, 관련된 두 사람의 전사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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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네. 오프닝 씬 말씀 주신 것 같은데, 의도했던 건 원망은 아니고 사실 육상부 친구들은 그때까지 강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진이가 큰 사고가 나서 다들 달려왔는데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와서 시선이 갔던 거에요. 당장 사고가 심각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고, 강이가 사람들의 심각한 스탠스를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인 것 같다고 느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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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제가 이어서 감독님들께 질문드릴게요. 다들 개인의 경험이나 혹은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인데, 영화를 완성하고 스스로 무언가 변화했다고 느껴지거나 해소된 지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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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사실 지금도 영화를 처음 만들 때의 생각이 변하지는 않았어요. '자기 구원은 셀프다.'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제 친구들 혹은 제 친구가 될 수도 있는 많은 여러분들이 보고 '나도 누군가한테 저런 존재일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저렇게 됐을 때 강이처럼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을까?' 같은 생각들을 해본다는 것만으로도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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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저는 전공이 각본이고 학교에서 처음 찍어보는 연출작이었어서 이렇게 이 작품이 영화제에 갈 줄도 몰랐어요. 그래서 연출가로서 역량 테스트 같은 의미였거든요. 이전에 속독 학원 이야기를 써놓은 게 있었는데, 작품을 바로 하기에는 연출 역량이 부족한 것 같아서 비슷한 이야기로 하나 만들어보자해서 찍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저로서는 다음 이야기를 찍을 수 있는 용기와 디딤돌이 되었던 작품이었고, 실제로 이 작품 덕분에 제작 지원을 받아서 속독 학원 이야기도 지난 가을에 찍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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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아무래도 작품에 친할머니가 나오시니까 영아처럼 '할머니와 둘이 자랐니?' 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고요. 저도 부산 사람이고 할머니도 남해에서 평생 사신 경상도인들이라 표현이 인색해요. 둘 다 무뚝뚝하고 사실 할머니와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닌데요. 거리가 멀어서 자주 못 뵈었고 말은 살갑게 안 하지만 그래도 서로 애정이 있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이 같아요. 할머니의 모습과 할머니가 사는 공간 그리고 그 마을을 담을 수 있었던 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어요. 전에 학교 교수님이 이 영화가 사람들한테 아무한테도 가닿지 않으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을 해봐라라고 하셨는데요. 아무에게도 가닿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이 정도의 의미는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해소된 부분은 아닌데 제가 이 영화를 배급사에 제출하면서 연출 의도를 적어야 했어요. 거기에 '세상이 넓어지려는 날들은 혼란스러운데 그중에서도 우리를 지탱해주는 건 존재한다.'라고 적었어요. 그런데 사실 아직 저는 저를 지탱해 주는 것을 찾지는 못했고요. 그걸 찾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서 연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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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혹시 할머니가 영화를 보셨어요? 어떻게 말씀해 주셨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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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할머니와 테스트 촬영을 하거나 리딩을 할 때도 어려워하시긴 했어요. 신세대 할머니는 아니시거든요. 문자나 이런 것도 어려워하시고 사실 시나리오도 제대로 읽어보신 적은 없어요. 저와 조연출 친구가 열심히 앉아서 상황 설명을 하고 순서 같은 것을 알려드렸어요. 저희가 순서대로 찍지는 못하니까 할머니께서 과부하가 오셔가지고 다른 씬에서 갑자기 다른 대사가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어서 '어떡하지?' 이러면서 찍었는데요. 그래서 할머니가 이 영화에 대해서 얼마나 깊게 이해를 하고 계실까는 굉장히 의문스러웠었어요. 그런데 그게 사실은 영화가 할머니의 마음 그 자체였어요. 자연스럽게 그 마음을 알고 계시고 '그래. 보내줘야지. 뭐 어떡하겠냐?'고 말씀을 하셨어요. 저희 스태프들이 촬영을 하면서 할머니, 달래와 정이 많이 들었는데, 할머니가 마지막 장면을 찍고 말씀하신 것이 영화 같았어요. 달이 비추는 밤에 할머니가 계단에 앉아서 달래한테 '달래야. 이제 또 우리만 남겠네.' 라고 하셔서 스태프들이 울고 그랬었거든요. 할머니가 사실 영화를 보시고 감상을 구체적으로 주시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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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단편영화 개봉극장에서 만난 감독님들을 차기작으로 다른 영화제에서 뵐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굉장히 반가운데 혹시 지금 준비 중이신 다음 작품이 있으신지 혹은 아직 준비는 안 됐지만 얘기하고 싶은 다음 이야기나 주제가 있는지 공개 가능하신 만큼만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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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아까 해소된 것이 있느냐고 질문 주셨는데 감독으로서 제가 잔잔하고 호흡이 긴 작품, 함구하는 인물들을 많이 다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더 관객들을 정신없이 끌고 가는 수동적인 관객도 따라갈 수 있는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요. 그래서 작품 준비와 제작 지원 준비를 하고 있어요.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만 말씀을 드리면 지금까지 여성 서사 위주로 만들었었는데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도 한번 찍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성공적으로 할 수 있어야 진짜로 작가, 감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친구가 사실은 양성애자였다는 것을 깨닫고 딜레마에 빠져서 갈등하는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올해 안에 찍고 싶고 만약에 찍게 돼서 상영을 하게 된다면 그때 걔구나 하고 한 번쯤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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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저는 아까 살짝 말씀드렸지만 속독 학원에 관한 코미디 영화 <스삐디!>를 만들었습니다. <쎄이 썸띵> 찍으면서 스스로 느낀 게 있는데 '나는 코미디 감독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코미디가 너무 좋다.' 였어요. 그래서 쓰기 어렵지만 코미디를 쓸 수밖에 없어요. <스삐디!> 로그라인은 이렇습니다. '1989년 정민이는 속독 신동이 되고 싶다. 60초 만에 저 책 한 권을 다 독파하는 동현 오빠처럼.' <쎄이 썸띵>이 큰 도움이 됐던 게 미국 학교에서는 작품을 제작사들에게 어필하는 기회가 있거든요. 웨스 앤더슨 감독님의 영화를 제작한 인디언 페인트 브러쉬라는 제작사가 있어요. 그 곳에서 제작 지원을 받게 돼서 미제 자본이 들어간 한국 코미디를 작년에 찍었어요. 아까 색감 부분 말씀해 주셨는데 제 생각엔 인디언 페인트 브러쉬에서 지원 받게 된 것이 그 도움이 컸던 것 같아요. 이제 막 편집을 끝내서 영화제에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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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저는 이 작품이 제대로 된 첫 번째 연출작이었고 학교 졸업 작품이었는데요.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에 있는데 가게 되면 아무래도 차기작을 찍겠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요. 사실 할머니와 함께 한 것이 큰 부분이었지만 비전문 배우와 함께하면서 연출가로서 조금 아쉬운 지점들도 있었어요. 아무래도 배우들 간의 호흡에서 오는 좋은 장면들이 있는데 그런 걸 충분히 담지는 못해서 아쉬움이 있었어요. 아주 완벽하게 제가 만든 구조 내에서 움직인다라는 느낌은 덜 할 수밖에 없으니까 다음에는 전문 배우들과 대사가 더 많은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습니다.그리고 제가 이번 영화에서 조연출해준 친한 친구와 제주도에서 반년 정도 살았던 경험이 있는데요. 그때의 경험이 소중하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서 언젠가는 꼭 써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최근의 일이라 아직 소화가 되지 않아서 당장은 쓰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언젠가는 꼭 쓰게 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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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나 언젠가 제주도 배경인 단편 영화를 만나시면 최승현 감독님을 떠올려주세요. 시간이 다 되어서 오늘 자리는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감독님들의 마지막 인사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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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네. 이렇게 금요일 밤에 다들 소중한 시간 내주시고 영화 보러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 조심히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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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저도 금요일인데 발걸음 해주셔가지고 너무 감사드리고 <쓰삐디!> 꼭 기억해 주세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 재밌거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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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저는 영화의 완성이 관객과의 만남이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과 만난 게 소중하고 감사해요. 막 배급이 진행 중인데 더 좋은 기회로 또 인사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 이름 기억해 주시고 다음 영화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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