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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아카이브 > 추천 DVD

추천 DVD

오!재미동 아카이브에 구비하고 있는 DVD를 특별하게 골라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년 6회에 걸쳐 매회 5편씩의 영화를 골라 추천해주는 코너!

영화인이 추천하는 DVD. 배우 최희진편.

오!재미동 추천 DVD 51st · 2024년 여섯 번째 · 배우 최희진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쓰리 빌보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우연과 상상>
배우 최희진
오!재미동 언더그라운드 플러스 작품 <백차와 우롱차> (이민화, 2022) 출연
영화 <다음 소희>(2023), <브로커> (2022), <경아의 딸>(2022),
드라마 <노 웨이 아웃>(2024), <재벌X형사>(2024), <혼례 대첩>(2023), <더 페뷸러스>(2022) 출연
안녕하세요. 배우 최희진입니다. 이번 오!재미동에서 추천 DVD를 제안 받고 한동안 고민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영화를 예전보다 많이 보지 못하기도 하고 글재주도 없는 편이어서 ‘어떤 영화를 추천해 드려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추천하시겠어요? 내 인생의 영화? 처음 영화를 보았던 때의 기억? 두 명의 여자주인공이 나오는 영화? 이런저런 타이틀을 붙여보다가 일단 ‘오!재미동에 가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충무로역. 이 충무로역에 오!재미동이 있다는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충무로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영화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이었죠. 하지만 얼마 전에 마지막 상징과도 같았던 대한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추억 속의 공간으로 남는 느낌입니다. 우린 지금 각자의 손에 작은 영화관을 가지고 다니니까요. 하지만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낯선 이들과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경험은 참 소중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 제가 말이 두서없이 길어지는 면이 있어서요. 다시 처음으로 되감기를 하겠습니다^^
충무로역 지하 1층에 DVD와 책을 볼 수 있는 공간과 심지어 작은 극장과 전시실까지 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살짝 용기를 내어 이곳에 들어서면 인상 좋은 분이 인사를 건네주십니다. 제가 잠시 머물렀던 몇 시간 동안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일하시는 분께 영화를 추천받기도 하고 또 보고 싶은 영화를 말씀하시기도 하더라고요. 또 주말에는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가 되기도 하고요. 일상과 영화가 만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DVD 진열장을 살펴볼까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도 있고 쉽게 OTT나 유튜브로도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예전엔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봤었지요. 원하는 영화가 대여 중일 때 비디오 케이스가 뒤집혀 있었던 기억. 아마도 4050분들은 한 번쯤 가지고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DVD 진열장을 손으로 짚어가며 살펴보았습니다. 한 번에, 한눈에 영화들이 들어오진 않았어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익숙한 이름들과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단편독립영화들, 한국영화들, 그리고 오래된 명작들부터 최신작까지 제법 많은 영화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에 의존해 다섯 편의 작품들을 골라보았습니다.
그 겨울 오!재미동에서 내가 만난 영화들입니다.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범죄, 스릴러 | 미국 | 101분 | 1994
감독 켄 로치
출연 크리시 록, 블라디미르 베가
 Archive No.I1005 
오!재미동에서 처음 만난 영화는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입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버드>와 헷갈리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켄 로치 감독의 94년도 작품입니다. DVD 케이스의 한 여성의 옆모습이 저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무심한 듯 화가 난 듯, 피곤해 보이는 얼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켄 로치 감독의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이를 키우지만, 정부의 복지정책에 의해 부모의 자격을 박탈당한 여성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쉽지 않은 영화예요. 처음부터 불안함과 아슬아슬함이 느껴져 계속 정지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그럼에도, 영화를 끝까지 보았을 때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작은 울림을 줍니다.
‘just remember in the winter far baneath the bitter snow lies the seed that with the sun's love in the spring becomes the rose’
기억해요, 한겨울 차가운 눈 아래에 태양의 사랑을 품은 씨앗이 잠들어 봄이 되면,
장미가 될 것이라고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매기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파라과이 출신의 호르헤는 매기의 노래에 반하고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매기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네 명의 아이가 있지만 지금은 함께 살고 있지 않습니다. 네 번째 아이의 아버지가 폭력적인 사람이었거든요. 매기는 그 남자와 헤어져 홀로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중 매기가 일을 하러 집을 비운 사이 화재 사고가 발생해 큰 아이가 화상을 입고, 매기가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복지국에서는 아이와 매기를 격리시킵니다. 매기는 어떻게든 아이를 키우고 싶어, 폭력을 행사했던 남자에게 다시 찾아가 보기도 하지만 결국 또 다시 폭력을 당하고 그렇게 아이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죠.
호르헤 역시 정치적 이유로 파라과이에서 망명한 난민입니다. 체류기간이 지나 영국을 떠나려고 했으나 매기를 생각해서 남기로 하죠. 그리고 그들의 가정을 만들어 갑니다. 조금 열악하기도 하지만 따뜻한 보금자리도 만들고요. 그리고 아이를 갖게 됩니다. 아이를 낳는 모습이 너무나 리얼하게 보여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매기가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아이를 키우며 호르헤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질 무렵. 다시금 복지국의 직원들이 나타납니다. 매기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인지를 계속 확인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고 아이를 데려갑니다. 그렇게 아이를 빼앗기고 망연자실한 두 사람. 미칠 듯이 싸우지만 그들을 결코 서로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평생에 걸쳐 노동계급의 이야기를 담아온 켄 로치 감독의 30년 전 작품입니다. 투박하고 거친 화면 속, 항상 담배를 피우며 소리를 지르는 매기의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현실 같아서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거친 삶에 대한 에너지와 작은 희망도 보게 됩니다. 복지정책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구요. 영화를 보는 일은 견디는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영화 속 인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말이지 힘들 때가 있잖아요. 특히나 켄 로치 감독의 작품들은 사회적 문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실제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얼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여운이 더 오래가기도 하고요.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즐겁고 자극적인 것만을 찾는 시대에 그럼에도 현실을 바라보고 연대하며 살아갈 것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리 빌보드
드라마, 범죄 | 영국 외 | 115분 | 2017
감독 마틴 맥도나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우디 해럴슨
 Archive No.I2682 
두 번째 영화는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입니다. 전에 이 영화를 너무 재밌게 봤었는데 어느새 제 기억 속에서 잊혔다가 오!재미동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프란시스 맥도먼드 주연의 <쓰리 빌보드>는 미저리주 에빙 외곽의 세 개의 광고판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토마스 무어가 쓴 ‘The Last Rose of Summer’라는 시에 곡을 붙인 아일랜드 민요로 시작하는데요. 시의 마지막 부분이 이런 뜻이라고 해요. ‘오! 누가 홀로 살아남기를 원하겠는가! 이토록 삭막한 세상에.’
낡은 세 개의 광고판을 바라보던 밀드레드는 손가락을 깨물며 고민하다가 뭔가 결심한 듯 차를 몰고 갑니다. 이때 보였던 긴 머리의 밀드레드의 모습은 광고회사를 찾아가면서 파란색 점프슈트에 하나로 틀어 올린 머리로 바뀌는데요.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모습은 영화 끝까지 유지되는데요. 딸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마을 외곽 오래된 광고판에는 오랜만에 광고가 실립니다. 빨간 바탕에 검은 글씨로 아주 강렬한 문장들이 쓰여있죠.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월러비 서장?’
바로 7개월 전에 살해당한 딸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는 경찰에게 제대로 수사할 것을 촉구하는 엄마의 호소였던 겁니다. 이 일로 마을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납니다. 일단 경찰들부터 난리가 나죠. 특히나 인종차별주의자이면서 경찰이라기보다는 동네 건달에 더 가까워 보이는 딕슨은 광고회사의 대표인 웰비를 협박하기도 합니다. 월러비 경찰서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하고 지금은 암으로 투병 중입니다. 월러비 서장은 다시 수사를 시작하죠. 사실 밀드레드가 이렇게까지 일을 벌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딸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죠. 차를 빌려주지 않는 엄마에게 그날 엔젤라는 “그냥 걸어갈 거야. 그러다가 강간당할 거야”하고 소리 질렀고 밀드레드 역시 “그래라”라고 말해버렸거든요. 한편 갈수록 몸이 약해지던 월러비 서장은 결국 자살을 택합니다.
딕슨은 서장의 죽음 소식을 듣고 분노에 차서는 웰비를 찾아가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립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본 후임 흑인 경찰서장 아베크롬비는 딕슨을 해고하죠. 누군가가 광고판에 불을 지르기까지 합니다. 밀드레드는 복수를 결심합니다. 모두가 퇴근한 밤에 경찰서에 불을 지르죠. 그런데 경찰서에는 월러비 서장의 편지를 받으러 온 딕슨이 있었습니다. ‘증오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침착함과 생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너는 좋은 경찰이 될 수 있다.’ 눈물을 흘리던 딕슨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엔젤라 헤인스의 기록을 가지고 탈출합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병실에 들어간 딕슨, 자신이 창문 밖으로 던져버린 웰비를 만납니다. 딕슨을 알아보지 못한 웰비는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하고, 그 말에 딕슨은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합니다. 웰비 역시 당황하지만 빨대를 꽂은 오렌지 주스를 건넵니다.
그리고 밀드레드에게 광고판 작업을 했던 사람이 찾아와 말합니다. 만약을 대비해 복사본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요. 그리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다시 광고판을 세우게 됩니다. 한편 홀로 수사를 해 오던 딕슨은 유력한 용의자를 찾지만, 불행히도 그는 범인이 아니었죠. 괴로워하던 딕슨은 밀드레드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가 범인은 아니지만 분명 죄를 저질렀고 그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안다고.
“어디 사는데?”
“아이다호요”
“재밌군. 내일 아침 아이다호로 드라이브를 가야겠네”
“같이 갈까요?”
“그래”
다음날 둘은 함께 차를 타고 세 개의 광고판을 지나 마을 밖으로 나갑니다. 그를 어떻게 할지는 아직 모르겠고 가면서 결정하자고 얘기를 나누면서요.
요즘은 좋은 영화를 보면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기보다는 유튜브 영화 평론들을 찾아보며 혼자서 좋아하곤 하는데요. 그런데 뭔가를 보고 함께 얘기 나눈다는 거 정말 중요한 일인 거 같아요. 다시금 제가 찾고 싶은 감각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떠올리면 두 가지 장면이 특히나 기억이 남아요. 맥도먼드가 창가에 누워서 버둥대는 벌레를 손으로 뒤집어 주던 장면과 웬디가 딕슨을 같은 병실에서 마주했을 때 오렌지 주스를 담은 컵에 빨대를 꽂아 주던 장면이요. 뭔가 설명할 순 없지만 직감적으로 이해되는.... 그 뭔지 아시죠? 아시나요? 하하.
이 영화는 삶의 축소판 같기도 하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 하나하나가 너무 인상적입니다. 인물들이 스치는 순간들도, 대사들도 그냥 흘려버릴 수가 없습니다. 순수한 악인이 있을 수 없고 때론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인물에게서조차도 나의 어떤 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변화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다는. 그러니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딕슨과 밀드레드는 마을로 돌아왔을까요? 아니면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악인들을 처벌하러 다니고 있을까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드라마 | 대만 | 237분 | 1991
감독 에드워드 양
출연 장첸, 양정이
 Archive No.I2783 
세 번째 영화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저희 오빠가 라디오 영화음악실을 좋아해서 영화 OST LP판들을 모았었거든요. 정기모임도 나갔었는데 한동안 오빠 방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의 영화 전단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풋풋한 소년, 소녀의 모습이 살인사건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고 왠지 가슴 아픈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보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 기억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가 오!재미동의 DVD 진열장 앞에서 다시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에 개봉이 되었더라고요.
영화는 1959년의 대만, 한 학교에서 시작합니다. 샤오쓰는 성적이 좋지 않아 중학교 야간부에 들어가게 되죠. 아버지는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샤오쓰의 가족은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입니다. 부모님과 누나 두 명, 형과 여동생까지 모두 일곱 식구가 함께 살고 있죠.
당시 학생들은 불안한 사회상황과 맞물려 폭력조직에 가담했는데 이곳에서는 소공원파와 217파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샤오쓰는 소공원파인 캣과 비행기와 친하게 지냅니다. 그리고 소공원파 대장 허니의 애인이었던 밍도 알게되죠. 밍은 모든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가야 하는 가장이기도 했습니다. 밍과 샤오쓰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낄 무렵 피신해 있던 허니가 돌아옵니다. 하지만 자신의 세력을 키워가던 217파의 산동에게 어이없이 당하고 맙니다. 밍은 며칠을 앓다가 창백한 모습으로 학교에 나타납니다. 그 앞에서 샤오쓰는 소리치죠.
“내가 평생 널 지켜줄게”
한편 태풍이 몰아치던 날 복수극이 벌어집니다. 죽은 허니의 무리가 217파를 급습해 산동을 죽여 버리죠. 죽어가는 산동을 바라보는 샤오쓰. 같은 날 샤오쓰의 아버지도 누군가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갑니다. 며칠을 보내고 돌아온 아버지는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점점 더 거칠어지던 샤오쓰는 양호 선생님께 대들었다가 학생부에 끌려오게 되고 아버지를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에 화가나 전등을 깨버립니다. 이 사건으로 샤오쓰는 학교를 그만두고 밍과 잠시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사이 밍은 샤오쓰의 친구였던 사령관 아들 샤오마와 사귀게 되고 이에 분노한 샤오쓰는 칼을 쥐고 샤오마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샤오마가 아니라 밍이 나타나죠.
“사람들이 널 무시하도록 두지 않겠어!” 
“날 바꾸려고 하지 마. 난 세상과도 같아. 바뀌지 않아!”
그 순간 샤오쓰가 밍을 찌릅니다. 샤오마는 1심에서 사형, 그리고 2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습니다. 대청소를 하는 샤오쓰의 가족. 라디오에서 중국 문학과 합격생 이름들이 들립니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 하나가 지나갑니다.
“장첸”
실제 벌어졌던 대만 최초의 청소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이 작품은 3시간 5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습니다. 샤오쓰가 입학해서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시간을 천천히 멀리서 정지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긴시간 동안 서서히 몸으로 느끼게 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그 시절. 섬세하고 예민하고 호흡 하나, 손길 하나에도 반응하던, 하지만 표현은 그렇게 무심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이 영화와 함께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에 제가 예상했던 만큼 아름답고 또 그보다 더 아픈 영화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장첸 배우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밍을 연기했던 양정의 배우의 다른 작품도 궁금했는데 다른 필모는 찾을 수 없더라고요.
블루레이로 본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화질이 좋았습니다. 최근 영화라고 느낄 정도로요. 혼란의 시대 한 가족에게, 특히나 샤오쓰에 일어난 일들이 우리 역시 지나온 시간이기에 더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첸 배우가 본명으로 나오는 것도 재밌었고요. 마지막 장면에서 합격자 이름으로 장첸이 들렸을 때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그 이름들로 엔딩 크레딧이 이어지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심한 듯 멀리서 바라보는 카메라,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Are You Lonesome Tonight?' 음악도 기억에 남습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드라마 | 이란 | 90분 | 1987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바하크 아마드 푸
 Archive No.I1301 
네 번째 영화는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었던 영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입니다. 학교 교실의 문을 한참 비추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요. 이런 고정된 화면이 주는 기대감과 안정감이 있답니다. 그리고 궁금해지죠. 어떤 일이 일어날까? 수업 시간에 늦은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일장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숙제 검사를 합니다. 그런데 옆 친구 네마자데가 숙제를 노트에 해 오지 못해 선생님께 혼이 납니다. 친척 집에 노트를 두고 와서 그랬던 것인데도 선생님은 벌써 세 번째라며 다음에도 이런 실수를 하면 퇴학시킬 거라고 으름장까지 놓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고 아마드는 집에 돌아와서 숙제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아요. 동생의 우유도 타야 하고 우는 동생도 달래주고 해먹도 밀어주고 냄비도 엄마한테 갖다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숙제를 하려고 하는 순간. 뭔가 이상합니다. 같은 노트가 두 개. 네마자데의 노트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때 아마드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말이죠. 그 큰 눈망울로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한테 말하죠. ‘친구의 노트를 가져왔어요. 친구한테 갖다 줘야 해요’
영화 내내 아마드는 친구의 집을 찾기 위해 달립니다. 친구가 살고 있는 포시테는 생각보다 넓은 곳이네요. 친구의 집을 찾기 위한 여정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아마드는 코케로 돌아왔다가 다시 포시테로 가기도 합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친절한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친구의 집을 찾지만, 그곳은 같은 이름의 다른 친구 집이었죠. 늦은 아마드와 느린 할아버지의 잠깐 동안의 여정도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내내 이란의 집 문들이 많이 비춰지는데요. 오래된 나무 문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아마드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네요. 친구는 만나지 못했지만 말이에요. 망연자실, 밥도 먹지 않는 아마드. 엎드려 뒤늦게 숙제를 하려고 하는데 심한 바람과 함께 문이 열립니다. 아마드는 문밖에서 급히 빨래를 걷는 엄마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다음날 다시 학교. 아이들은 선생님 앞에 숙제를 내놓습니다. 아마드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늦잠이라도 잔 걸까요? 네마자데는 이미 울상입니다. 오늘도 공책에 숙제를 해오지 못했으니까요. 이제 네마자데 차례, 그때 아마드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공책을 주며 말하죠. “네 숙제 내가 해왔어.”
하루 종일 먼 길을 달리며 친구의 집을 찾아 헤맸던 아마드가 밤사이 친구의 공책에 숙제를 대신 해준 것입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온몸으로 깨달은 아마드가 참 대견스럽게 느껴집니다. 오래된 영화를 이렇게 DVD로 다시 볼 수 있어 좋았고요. 도통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어른들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저는 또 어떤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드의 순수한 눈망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이 세 편의 영화는 코케 3부작, 또는 지그재그 3부작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함께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연과 상상 中 다시 한 번
드라마 | 일본 | 121분 | 2021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후루카와 코토네, 현리
 Archive No.I2772 
마지막 작품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인데요. 세 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도 제가 소개해드릴 영화는 세 번째 에피소드 <다시 한 번>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제론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 바이러스로 모든 이메일과 기록들이 유출되었고 우편과 전신의 시대로 회귀했다고. 코로나 시대에 대한 은유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미야기 여자 고등학교 동창회가 있는 날, 뭔가 어색하게 서 있는 여성이 있습니다. 이 여성의 이름은 나츠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하고도 섞이고 싶지 않은 것도 같네요. 한 친구가 아는 척을 합니다.
“나 기억해?” 
“응. 키요하라잖아.” 
“키요미야.” 
“미안해.”
나츠코는 2차는 가지 않고 숙소로 돌아옵니다. 오랜만에 자주 갔던 식당에 가보기도 하죠. 고등학교 때 여기 자주 왔었다며 저를 기억하시냐고 주인 아저씨께 물어보지만 주인아저씨 역시 기억하지 못합니다. 센다이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탄 나츠코,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누군가를 바라봅니다. 드디어 찾던 사람을 만난 모양이네요. 급히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탑니다. 친구는 반대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둘은 다시 교차합니다. 위에서 기다리라고 말하죠. 나츠코는 반가운 친구의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고 얘기합니다.
“차 마실 시간 돼?” 
“어이없겠지만, 택배를 받으러 가야 해. 괜찮다면 집으로 가지 않을래?”
한 눈에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보이는 친구의 집.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일상의 얘기를 주고 받다가 나츠코는 말합니다.
“뭔가 겉도는 얘기만 나누는 것 같아. 넌 행복하니?”
친구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하죠.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왔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 남들이 화낼 것 같아.” 
“네 생각을 묻는 거야” 
“모르겠어. 너는 행복하니?” 
“난 행복하지 않아. 계속 후회했으니까. 내 소중한 감정을 위해 싸우지 않는걸. 더 상처 받을까봐 두려웠으니까. 그래서 너를 만나려고 온 거야.”
그때 친구는 나츠코의 말을 막으면서 말합니다.
“사실 나 너의 이름이 기억이 안나. 얘기하다 보면 떠오르거나 네가 말해 줄줄 알았어.” 
“너무하네” 
“그래서 말인데 넌 내 이름 알아?”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유키 미카”
“코바야시 아야”
우연이 만들어 낸 멋진 상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 역시 나이가 들면서, 자꾸 나이얘기 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민망한 순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기억을 해내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얼굴에 드러난 표정으로 단박에 들키고 말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된 후 제가 쓰는 방법은 솔직한 게 최고라는 겁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어디서 어떻게 만났을까요?” 찾고 있었던 그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츠코와 아야는 이 만남을 통해 서로를 위로합니다.
우연한 만남을 통한 진실한 대화가 마음 깊은 곳에 덮어두었던 작은 공간들을 밝혀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만남이, 이런 대화가 가능할까요? 정말 상상일 뿐일까요? 아니면 지금 옆에 있는 누군가와 이런 대화를 한번 해 보면 어떨까요?
연극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롱테이크 장면들이 많았는데요. 어떻게 리허설을 했는지 작업하는 스타일은 어떤지도 궁금해집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의 최근작을 보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고르게 된 영화였습니다. 그의 작업 기록을 담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이 책장에서 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오!재미동의 DVD들을 살펴보며 그 안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찾아볼 수 있었다면 조금 과장일까요? 그리고 오!재미동이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여가를 위한 곳으로도, 또 바쁜 일상 속 누구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리로도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히 나에게 큰 위로를 주는 작품을 만날 수도 있고요. 핸드폰 알고리즘의 추천이 아닌 실제 DVD를 만져보며 이것은 어떤 영화일지 누군가의 추천 없이 순수한 나의 호기심과 끌림으로 영화를 선택해 보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득. 갑자기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와 나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가요. 갑자기 그 영화가 생각나네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혹시 오늘 충무로역을 지나신다면 오!재미동 한번 들려보시겠어요?
최희진 배우가 추천한 영화들을 오!재미동 아카이브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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