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 No.41
유진 리처즈 사진, 찰스 보든 글
열화당
선정과 글. 문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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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미동 책장 왼쪽 가장 아랫칸, 눈길도 손도 덜 가는 그 구석에는 20년 전부터 아카이브에 모여 사는 작고 검은 책들이 있다. 열화당 사진문고 2003년 초판본이다. 스무 해 전에는 유진 스미스, 낸 골딘 등 더 알려진 이들의 사진집도 이곳에 있었다. 유명세만큼 사람들의 손을 더 탔을 책들은 아마도 낡아서 사라지고, 조금은 덜 알려진 작가들의 이름을 얹은 책들은 20년의 시간을 지나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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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개 드리는 책은 그 중 유진 리처즈의 사진집이다. 그의 흑백사진은 뜨겁고 힘이 세다. 1970년대 초반 그는 미국 남부 아칸소에서 빈민운동가로 활동하며 가난한 이들의 삶을 가까이서 찍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그가 흑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언제나 그가 덩치 크고 험악하고 거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4p)” 그는 살해 협박을 받고 백인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다. 작가를 꿈꾸기도 했던 그는 이 폭행으로 머리를 다친 후 글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고, 날짜와 지리 감각에 혼란을 느낀다. ‘구타 때문에 기억에 장애가 생긴 그는 진짜 핵심은 잊을 수 없는 것 같다. [...] 자신의 모텔방을 찾을 수 없는 그 남자는 신통하게도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북아메리카의 벽지를 돌아다니며 언제나 사진 찍을 것을 찾아낸다. (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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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잊을 수 없는 사진 중 하나는 유방암으로 잘라낸 가슴을 드러낸 채 환히 웃고 있는 <도로시아>다. 베트남전 반대운동 중에 만난 그의 첫 아내, 도로시아는 이 사진을 찍고 사 년 후 숨을 거둔다. 그는 도로시아의 투병 사진들을 묶어 『삶으로의 폭발 Exploding into Life』이라는 책으로 낸다. 그의 모든 사진들은 삶 속으로 폭발하는 것 같다. 어떤 사진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화상 같은 상흔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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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가지 아쉬움은 번역이다. 유진 리처즈의 친구이자 저널리스트인 찰스 보든이 글을 더했는데, 잘못 옮겨진 부분이 많다. 유진이 “사진의 침묵”을 저어할 때, 이를테면, 죽어가는 손자를 업고 먼 길을 걸어온 늙은 여인의 “사진 속 아름다운 검은 피부를 둘러싼 문맥, 냄새, 사랑, 웃음, 죽음”을 사진은 전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 때. 그가 찍은 쉰 다섯 장의 사진을 앞에 두고 찰스는 이렇게 쓴다. “그는 말하고 있다. 쉰 다섯 번을 말하고 있고, 그 모든 것은 한 장의 사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긴 침묵이다.” (p.15) 사실 이는 정반대의 번역이다. 원문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긴 문장이다“로 끝난다. (And all one long sent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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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리처즈는 여전히 세상에 말을 걸고 있다. 그가 작업한 다큐멘터리 <그날은 왔다>는 2001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그리고 바로 지난 달, 2025년 3월에 여든살이 된 그의 새 사진집 『Do I know you?』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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