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방송/영상이론 No.291
구로사와 기요시 지음
미디어버스
선정과 글. 길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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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화가 어찌 되어가고 있는가’, ‘정치나 사회와는 어떤 관계인가’, ‘작가성이나 예술성 혹은 역사성 같은 건 영화의 어디쯤에 나타나는가’ 하는 등의 학문적 고찰과는 거의 무관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 단상에서 제가 드릴 이야기는 제가 평소 영화 촬영 현장에서나 기획 준비, 각본 집필 와중에 무심코 느끼던 바에 관한 내용으로만 일관하게 될 겁니다. 본격적인 연구 발표 같은 게 아니라, 그저 당사자의 소박한 체험담에 불과하니 부디 홀가분한 기분으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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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는 자타공인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거쳐온 현대영화의 거목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의 영화를 말한다」는 그런 그가 영화에 대해 강연한 것을 묶은 강연집이다. 영화의 쇼트, 로케이션, 영화사 등 비평적이고 기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물론, 영화감독이 하는 일, 영화에 대한 본인의 가치관도 이야기하고 있어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론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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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깊이 있는 내용이 평범한 문체로 쓰였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종종 비평적 강연이나 이론서에서 경험하는 높은 지식의 장벽은 허물어지고, 기요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점을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기요시 감독은 영화 촬영 당시 겪었던 일을 상세하게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비평적 사유는 물론 영화 제작의 실용적, 경제적 측면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 역시 이 책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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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세기 영화부터 21세기 영화로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며 하나의 진단 내지는 그의 비평적 판단을 보여주는 후반부 21세기 영화에 대한 연속강의 챕터는 책 속의 흥미로운 강연 중에서도 단연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내재한 묵직한 주제들을 살펴보며 많은 생각을 던져줄 것이라 확신한다. 이 책을 통해 한 명의 영화감독이자, 한 명의 시네필인 그가 체득한 영화론이 많은 독자에게도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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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화는 너무나 불길하고 폭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전혀 구제할 길이 없느냐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폭력이나 죽음이나 불행은 도처에 있지요. 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 역시 외측에, 어쩌면 심지어 바로 곁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보이지는 않고 영화 속에 그려져 있진 않더라도, 영화의 바로 외측 어쩌면 바로 곁에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요? 조금만 더 스크린을 응시하고 가만히 기다리면 이윽고 프레임 바로 바깥에서 희망의 빛이 들이비치지는 않을까요?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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