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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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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한국 | 98분 | 2018
감독 김윤석
출연 염정아, 김소진
Oh!zemidong Archive No.K0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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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은 때때로 마음 안에서 기인한다. 누군가를 붙잡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마음. 혹은 잘못 되어가는 걸 알아도 곁에 두고 싶은 마음. 우리는 그것을 외로움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오만 감정 중 가장 인간을 방황하게 만드는 외로움이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감정이다. 그것은 때때로 잘 유지해오던 세상을 망치기도, 관계를 망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방황하는 것은 언뜻 두 소녀들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 대환이다. 외로움에 못 이기고 실수를 저지르고, 외로움에 떠밀려 다시 돌아가려 애쓴다. 왜 외로움이 우리를 망치는지, 우리는 외로움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며 일전에 한 감독님과 깊은 토론을 했던 게 기억이 났다. 감독님은 외로움이 감정이라고 했고, 나는 기분이라고 했다.이 영화를 보셨다면 그 감독님이 나의 승리라고 하시지 않았을지. 감정은 남는 것이고 기분은 깨는 것이니까. 대환이 일순간 잠깐 찾아드는 기분에 한 방황은 처참하게 끝이 났다. 기분에 선택한 모든 결말은 결국 그런 것이다.
대신 영화를 거치며 외로움의 허상에 대해 깨달은 소녀들은 그 순간에 든 감정으로 우유를 마시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 행동을 관객들이 납득은 못한다 하여도, 지켜볼 수는 있다. 그게 기분으로 내린 선택과의 차이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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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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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 한국 | 104분 | 2013
감독 박찬경
Oh!zemidong Archive No.K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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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샤머니즘은 아름답다. 대중을 향하고, 대중을 위하는 그 특징은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익살스럽고, 화려하며, 재밌다. 만담꾼처럼 무가를 뱉는 무당이나 현란한 연주를 하는 악사들이나, 구경하는 사람들의 맞장구나. 한 편의 오페라나 연극 무대 같다고 얘기하는 극중 민속학자의 말은 <만신>을 보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게 대중과 함께하는 종교이기에, <만신>안에서 무속의 역사는 대중의 역사, 즉 한국의 역사와 함께한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새마을 운동과 민주화 운동 속에서 뜻밖의 핍박을 받고 혹은 추앙을 받고, 끝내는 현대에서 문화재가 될 때까지. 나라를 대표하는 무당으로 불리는 김금화를 통해 영화는 무속의 근대사를 보여준다. 만신의 주인공이자 시대 역사의 주인공인 김금화 씨는 방황하는 세상 속에서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간다. 영화 안에서 새마을 운동 당시 핍박에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산 어귀에서 자신들끼리 모여 다시 판을 벌리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리게 남는 장면이다.
김금화 씨가 방황을 뚫어나가는 방법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모두 해설이 된다. 약간의 스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출연했던 모든 출연진이 김금화 씨의 아역에게 시대를 상징한 모든 쇠붙이들을 무도구로 만들라고 주는데, 그 장면은 그 시대의 아픔을 무속에 의존하여, 신에 의존하여 뚫어내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때로 방황을 할 수 밖에 없는 시대와 순간을 마주하더라도, 믿고 걸어갈 수 있는 자신의 길이 있다면, 돌파해내진 못한다 하더라도 걸어가고 싶은 길이 있다면. 우리는 휘청이더라도 순간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혼을 빚어내는 예술가에게 영화는 그렇게 위로와 찬사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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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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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한국 | 80분 | 2015
감독 김진황
출연 박종환
Oh!zemidong Archive No.K0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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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어쩔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어떻게든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고. “보지 못했다, 알지 못한다.” 그렇게 영화는 내내 그 대사를 반복한다. 슬픈 거짓말이자 슬픈 진실이다. 영화는 인정과 그리고 외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정을 받고 싶었던 남자가 기어코 인정을 받는 순간이, 얼마나 비참하고 잘못된 상황으로 나타나는지. 영화는 잔혹하게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들 중 누구라도 꿈을 잃는 것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중 누구라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어 “모릅니다. 보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은 꽤나 자신에게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지금은 유명해진 배우들의 과거를 즐겁게 보는 것도 이 영화의 큰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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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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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코미디 | 한국 | 112분 | 2017
감독 심찬양
출연 송의성, 이요셉
Oh!zemidong Archive No.K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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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 가득하더라도 미약한 결과들. 원하는 이상에 비해선 한없이 작은 우리들. 그러나 번쩍번쩍 빛나고 번뜩번뜩 이글거리는. 이들의 열정과 말들에 웃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인공들이 말하는 영화에 대한 비장한 정의들과 다짐들에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나를 보면서, 내가 그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들인지 알아버린 영화인이라는 사실이 한탄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저 기대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열정과 의지가 아름답고 좋아서.
레디, 액션 소리에 속아 영화로 온 나는 아직도 영화를 찍는 뻔한 이야기들에 설레고 기쁘다. 어설프게 열정 있고 미숙하게 열심인 사람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기뻐해 버리고 만다. 완성해낸 결과물이 조악하더라도, 기립박수 치고 싶어지는 우여곡절들. 아직 영화를 찍어내는 순간들을 사랑한다면, 꼭 보기를 바라는 영화다. 영화는 고작 두 시간에 불과한 수명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너무 오랜 여운을 남긴다. 마치 실제 누군가의 인생처럼. 우리가 결국 영화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의 삶과 너무 닮아서가 아닐지. 여러분이 우리의 방황과 닮은 영화를 보며 한 이틀 정도는 이 영화가 말하는 것들에 빠져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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