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박세영
<캐쉬백>(2019),(2020), <금장도>(2021),
<다섯 번째 흉추>(2022),<땅거미>(2024) 외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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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화를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보정하고 만드는 박세영입니다. 저는 다섯 편의 작품을 선정하고 이 다섯 편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상 다섯 편의 영화 모두 크게 공통된 분모가 많은 작품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주제로 묶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인 동시에 어떻게 보면 쉬운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다섯 편의 영화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작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눕는다’는 것입니다. <이어도>, <남매의 집>, <나쁜 영화>, <지옥화>, <당신 얼굴 앞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눕습니다. 물론 걷기도 하고 가만히 멈춰 서기도 하고 눈을 깜빡이기도 하지만 각 영화에서 인물들이 누울 때 저는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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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누워있다기보다는… 자지 못해서, 억지로 잠을 자기 위해서, 혹은 아주 잔인한 목적을 가진 채로 이용당하기 위해서, 강제로, 넘어져서, 넘어졌으나 일어설 힘이 없어서, 서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주변 환경이 너무 혹독해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등 누워있는 이유가 다 하나 같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른 동시에 다섯 편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보면서 제가 눕고 싶지 않다는 감각이었습니다. 보통 해가 지고 잠을 자기 위해서 인물들이 침대에, 하루를 끝내고 쉬기 위해서 소파에 눕는 장면을 보면 저도 같이 편해지기 마련인데 이 다섯 편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누워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코어에 힘을 꽉 주고 허리를 펴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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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누워있는 사람은 얼굴이 수직적으로가 아닌 수평적으로 돼 있어서 중력의 무게가 얼굴에 다르게 작용을 합니다. 보통은 주름과 근육, 피가 아래로 쏠리며 저희가 흔히 보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누워있으면 한쪽으로, 그게 누워서 옆을 보고 있다면 한쪽 얼굴로, 위를 보고 있으면 뒤통수 쪽으로, 얼굴이 바닥을 향하고 있다면 코끝으로 중력이 쏠리며 일그러지기 마련입니다. 카메라는 이런 얼굴을 대체로 수평선에 맞게 찍으며 저희는 또한 카메라와 같은 축을 공유하며 일그러진 얼굴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누워있는 사람을 본다는 것은 아주 약간 이질적으로 어딘가 뒤틀린 얼굴을 본다는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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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밖에서, 일상 속에서 누워있는 사람을 보기 위해서는 꽤 각별하고 친한 사이, 가족이나 연인이거나 친한 친구여야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누워있는 것은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편한 사람이어야, 편한 환경이어야 하는 것이며 인간도 마찬가지로 이방인 앞에서 눕지는 않습니다. 친밀한 공기가 만들어지고 다소 사적인 이 행위는 어떻게 보면 혼자가 아닌 남과 함께, 혹은 남 앞에서 했을 때 또 완전히 다른 맥락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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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미스터리 | 한국 | 110분 | 1977
감독 김기영
출연 김정철
Archive No.K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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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님의 <이어도>라는 영화를 처음 언제 봤는지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다섯 번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납니다. 베를린에 있는 편집실에서 제 영화를 두 달 동안 매일 쉬지 않고 하루의 반 정도를 할애해서 옛-공산당 건물에서 편집할 때 다섯 번 봤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니 한국이 그리워서 봤던 것 같습니다. 우버 이츠로 맛이 약간 어설픈 비빔밥을 시켜 먹으며 선택한 영화는 <이어도>였습니다. 또한 <이어도>라는 영화는 제가 그 당시에 편집하고 있던 작품 <지느러미>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날아다니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저돌적이고 계획되지 않은, 동물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침없는 줌과 팬-틸트, 더 과감한 편집과 그만큼 기이한 에너지가 팽배한 화면 속 색과 얼굴, 대사와 사운드, 그리고 이야기 구성을 보고 있자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많은 서양인들한테 둘러싸인 채로 공상을 하며 영화를 계속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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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어도>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 붙잡고 밀치고 당기고 몸을 뒤섞고 묶고 끌고 다니며 어딘가에 스스로를 투척합니다. 죽은 뒤에도 시체에게 쉼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결말 즈음에 누워있는 시체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꽤나 자극적인 장면이어서 묘사를 하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제가 느끼는 감각은 누워있을 때 가끔 느끼는 감각이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텍스트를 읽어도, 이미지를 봐도 느끼지 못한 감각을 이 장면에서 매번 느낍니다. <이어도>라는 영화는 이런, 너무 얇고 미세해서 일상생활 속에서도 까먹은 감각을, 아주 전투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위에 말한 촬영 방식이나, 화면을 가득 채운 장면들, 연출적 방향 등에서 원초적인 감각들을 끊임없이 느끼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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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언급한 장면에서 시체는 훼손됩니다. 그러나 고어하거나 바디-호러 문법으로 시각적 자극만을 위한 훼손은 아닙니다. 어딘가 슬픕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장면에서 이런 감정이 들까 싶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감각입니다. 시체한테 이입을 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체의 신체에 이입하며 훼손을 하는 주체와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몸짓에 이입을 하며 저는 일종의 디아스포라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선과 악, 누군가가 나쁜 짓을 하고 누군가가 착한 짓을 하고 그런 식의 이분법적인 명확한 감정이 아닌, 뭘 느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에서 계속 감각적 타격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감각을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요소는 누워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시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살아있기 때문에 수직적으로 화면 속에서 존재를 합니다. 그이만 수평적으로 화면의 하단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렇게 길게 펼쳐진 신체와 화면 상단에서 계속 움직이는 생동하는 신체들의 군상이 추상적으로 변하며 어느새 누운 신체는 육지, 땅, 바다처럼 보이고 그 상단의 신체들은 나무, 갈대, 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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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어도>를 보게 되신다면 신체들이, 수평적으로 널브러진, 수평적으로 화면을 길게 가득 채운 신체들이 움직이는, 움직여지는, 카메라와 빛, 그리고 중력과 맺는 관계들에 대해 집중해 보는 것도 아주 좋은 경험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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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화
드라마 | 한국 | 88분 | 1958
감독 신상옥
출연 김학, 최은희
Archive No.K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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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옥화>에서는 인물이 원하지 않아도 계속 수평적으로 위치를 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특히 후반부에서,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러나 저희처럼 잘 갖춰진 도로 위를, 시멘트 바닥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혹독한, 자연의 질긴 생명력이 느껴지는 지형들 위로 걷습니다. 물로 적셔진 진흙 바닥, 갯벌, 무더운 여름 햇살로 적셔진 비포장 도로 등.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중력의 무게를 계속 감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렵고 혹독한 풍경 속을 걷는 인물들의 발걸음은, 몸짓은 도시에서 저희가 걷는 그런 걸음과 몸짓과는 전혀 다릅니다. 계속해서 무너지고, 기어가고, 달리다가 넘어지고, 심지어 그냥 걸으려고 하더라도 땅 자체의 예측불가능한 지형 때문인지 발걸음조차도 어설프고 위태롭습니다. 게다가 흑백영화이기 때문에 색을 포함한 많은 정보가 제거되고 오직 질감만 남을 뿐입니다. 화면 하단에 계속 등장하는 수많은 지형들의 질감은 반짝거리고 아른거리고 못생기기도 했고 밟고 싶지 않게, 밟기 힘들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인물들은 끊임없이 이 지형들 속에서 헤맵니다. 이런 한계와 제약 속에서 전진하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자면 영화의 서사적 방향성, 그리고 이야기적 흐름 이외의 동작적 운동성이 부각되며 이런 부각이 거듭될수록 지형과 인간이 이를 통과하는 방식 또한 이 영화에 엄청나게 많은 레이어와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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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말에 등장하는 강이 있습니다. 여기서 인물들은 쫓고 쫓기고 도망치고 도망치는 이를 추격합니다. 그리고 모두 하나같이 넘어지고 눕고 누워있는 사람을 보기 위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어서 있던 사람도 눕게 됩니다. 마치 강이, 갯벌이, 진흙이 자석처럼 작용을 하며 사람들을 계속해서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엄청난 엔딩 장면에서 저는 화면에 수직적으로 얼굴이, 사람이 담겼을 때보다 수평적으로 담겨있는 모습에 적응을 한 것 같았습니다. 저도 끌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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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영화
다큐멘터리 | 한국 | 118분 | 1997
감독 장선우
출연 한슬기
Archive No.K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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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는 제가 선별한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다양한 장소에 누워있는 것을 담은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하철역, 아무런 길바닥, 골목길 등 도시의 거의 모든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누워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불편한 장소들이 태반입니다. 그러나 인물들은 막상 불편해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서울역 광장에 누워있어도 자기 집인 것처럼 누워있는 것 같고 청소년들이 밤에 거리를 걷다가 그냥 길바닥 아무 곳에서 드러눕는 것을 보면 자기 침실에 돌아온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경계와 이분법이 많이 무너지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의 규칙과 약속들이 계속해서 무너지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됐습니다. 영화는 그리 친절하거나 보기 쉬운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손을 뻗어 자신한테 다가오라고 초대를 하지 않습니다. 마치 오래된 폐가의 어느 방에서 녹슬고 있는 비디오를 발견하고 튼 것 같은 느낌으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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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디서 눕든 편해 보이지만 절대로 그들이 거기에 눕고 싶어서 누웠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누울 수밖에 없어서 그 자리에, 서울역 광장에, 아무런 지하철역에 누워있는 것이 아닐까요? 누군가가 그들한테 편한 에이스 침대를 주고 가지라고 한다면 거기에 누웠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을 것 같고요.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에이스 침대를 주지 않습니다. 더러워 보이기 때문에, 돈이 없기 때문에, 불량아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의 변방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할 수 없이 이곳에 누워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과 태도, 하는 말들을 보면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단한 것은 전혀 그런 기능으로 지어지지 않은 도시의 여러 지형들 위에, 특히 콘크리트 수직과 수평들 위에, 딱딱한 바닥과 차가운 시멘트 위에 이들은 그냥 눕습니다. 그냥 누워서 잠을 자고 노가리를 까고 웃고 떠들고 울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의식을 잃기도 하고 울부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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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나라에서는 노숙을 못 하게 하려고 곳곳 벤치에 스파이크를 설치하거나 사람이 누울 수 없도록 벤치 설계를 일부러 불편하게 만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몇 개월 후에 이런 ‘불편한’ 곳들에 어떻게든 누워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스파이크가 있어도 그 위에 불편하게, 몸을 불편하게 뒤틀어서 눕는 사람들, 웅크리고 누운 사람들, 어떻게든 신체를 뒤틀고 비틀어서 의지적으로 누우려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를 많이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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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편의점에서 간식 사려고 밖으로 나갔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도시란 보기엔 사람을 위해 설계돼 있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전혀 사람에 대한, 사람들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려가 없어 보였습니다. 수직과 수평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도시 풍경들에서 수직이, 수평이 기울어지거나 무너질 틈이, 동그라미와 곡선이 공존할 수 있는 틈과 여유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쁜 영화’가 보여주듯, 인간은 어떻게든 어디서든 누워서 잘 수 있습니다. <나쁜 영화>는 제게 이런 맥락에선 그런 영화입니다: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기시켜 주는, 그게 아무리 보기 힘들어도 봐야 합니다, 그리고 불편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자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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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의 집
드라마 | 한국 | 43분 | 2008
감독 조성희
출연 박세종, 이다인, 구교환
Archive No.K0097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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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은 단편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오빠는 침입자들의 지시로 바닥에 눕게 됩니다. 그 장면을 접하실 때 영화가 형성하는 분위기, 상태 등에 주목해보시면 흥미로운 감상이 되실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저희가 보통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들, 생각들 (안정감, 편안함, 쉼 등의 키워드들을 하나씩, 조금씩 건드리고 뒤틀고 익숙한 것들을 완전히 낯설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끝날 때쯤에 집이라는 공간이 거의 외계적인, 너무 이질적으로 불편하고 불쾌한 공간으로 변해있습니다.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조금 더 자세히 얘기를 하자면 영화가 끝난 뒤에 남매가 자려고 누웠을 때를 떠올리면 그보다 더 불편할 수가 없습니다. 침대라는 공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기능과 어떤 의미들이 상실된 채로,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어떤 편하고 익숙한 감각이 완전히 상실되고 변모한 채로 영화는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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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게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익숙한 행위, 어떻게 보면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별 의미 없이 하는 행위를 주목하고 그것이 가진 의미를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것, <남매의 집>에서 느낀 것은 이런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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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얼굴 앞에서
드라마 | 한국 | 85분 | 2021
감독 홍상수
출연 이혜영, 조윤희, 권해효
Archive No.K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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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님의 영화에서 사람들이 자주 누워있는 것 같습니다. 술에 뻗어서, 자려고, 서로 자보려고, 쉬고 싶은데 쉬지는 못하겠으나 그래도 쉬려고 노력하려고… 그러나 대체로 편해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가 보통 누울 때 쉬려고 눕는다면 홍상수 감독의 인물들도 저희와 목적은 같으나 결코 그런 쉼을 찾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눕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계속해서 이런 ‘노력’과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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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얼굴 앞에서>의 인물이 자주 눕는 소파가 있습니다. 방석을 두 개 베고 눕기도 하고 약간 몸을 틀어서 눕기도 하고, 한쪽 팔을 소파 바닥에 기대서 눕기도 하고 등을 소파 뒤에 기대서 눕기도 하고 거기서 잠도 자고 핸드폰도 만지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멍도 때립니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 소파의 색과 질감을 저희는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카메라의 룩 때문인지, 약간 삐걱거리고 흔들리는 카메라 무빙 때문인지, 색감 때문인지, 배우님의 연기 때문인지, 서사적 방향 혹은 대사 때문인지 이렇게 일상적인 장면과 동작을 계속 보고 있으면 저렇게 흔한 소파마저도 완전히 낯선 것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누웠을 때 저희 모두 소파가 꺼지는 정도를, 살갗이 닿았을 때의 감각을, 여름에 땀 묻은 피부랑 닿을 가죽의 질감이 어떨지 너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져서 그런지 그런 익숙하고 알 것 같은 감각을 계속 느끼다 보면 이후에 다른 가능성들이 열립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테이크가 길기도 하고 호흡이 빠른 액션 영화가 아닌 만큼 저희는 계속해서 봐야 합니다. 누워있는 인물을, 그리고 인물이 누워있는 그 소파를. 그리고 어느새 소파의 존재를 까먹습니다. 누워있는 것도 까먹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다시 여기로 돌아오고 저희는 다시 이 소파의 존재를, 촉감과 질감을, 그리고 누워있는 인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적으로 처음 느낀 어떤 지나치게 일상적인 어떤 감각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그게 바뀌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그게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해하며 영화를 봐도 참 재밌을 것 같습니다. 마치 하나의 그림을 계속 오래 볼 때의 감각이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알 것 같은, 그게 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한 자신감이 점점 어떤 지루함 혹은 나태함으로 변하고 그 지루함과 나태함 또한 유통기한이 지난 후에 다른 감각으로 변하듯, 계속해서 소파의 의미가, 그 위에 누워있는 행위의 의미가 바뀌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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