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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유난히 눈도 많고 추웠던 겨울이었지만, 어김없이 봄이 왔다. 봄에는 새로운 것들이 시작되고 새로운 기운이 움튼다. 오랫동안 얼어 있었던 땅을 뚫고 개구리가 올라오고,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번 달에는 오재미동의 아카이브 301번부터 600번까지의 영화들 중에서 5편을 골라보았다. 개구리는 언 땅 아래서 겨울잠을 잔다지만 북극의 사람들은 얼음 위에다 얼음으로 얼음집을 짓고 살고, 바다표범을 잡아 온 가족이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첫 번째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인 플레허티 감독의
영화 속 자막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 영화는 1913년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는데, 애초에 그들에게서 촬영 허가를 얻기 위해 그들을 촬영한 필름을 현상해서 보여주었다고 한다. 어떤 것들을 촬영하려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정작 그 필름이 어떤 영화가 되는지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촬영을 마치고 제작진이 돌아가려고 하자 나누크는 무척 아쉬워하며 계속 함께 살자고 했다고 한다. 7년 이상이나 생활을 함께 하며 지냈으니 가족 단위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그들로서는 제작진이 가족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1920년에 촬영을 마친 후 2년 후에 나누크가 사냥 중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때는 미국에서 이 영화가 매우 흥행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은 영화 속에서만 이야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실제 관계가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기도 하다.
두 번째 영화는 역시 다큐멘터리인
세 번째 영화는 스웨덴의
소녀들은 마치 병아리들처럼 재잘대지만 어른들과 공유하지 않으려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어른들은 어른이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들은 어른이 하는 것들을 전부 할 수 있는 이미 어른인 것이다. 욕구도 있고 꿈도 있고 사랑도 하고 아파도 한다. 16살 생일을 맞은 아그네스는 학교에 친구가 별로 없다. 그런데 아그네스의 생일 파티에 엘린이 나타난다. 아그네스는 평소 엘린을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숨겨왔다. 장난처럼 시작된 이 관계는 아그네스도 엘린도 모두 혼란에 빠트리고, 또한 엘린을 좋아하던 소년 요한까지도 얽혀들어 온 학교가 떠들썩한 스캔들이 되어버린다. 학교 화장실에 갇혀 버린 엘린과 아그네스는 둘의 관계를 모르는 친구들과 선생님들 사이를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가벼운 에피소드로 시작하지만 가볍지 않은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네 번째 영화도 유럽의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프랑스의
마지막 영화는 홍콩의
영화를 보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물론 영화산업의 호기가 분명히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를 보는 이유라기보다는 영화를 보기 위한 시간의 확보에 대한 문제다. 봄이 되었다고 영화를 볼 이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영화를 볼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봄이 되었음을 자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기지개 켜는 개구리처럼, 왕성하게 뛰어다니는 병아리처럼 영화를 보러 나가기 위해 “봄이니까”라고 말해보는 것,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