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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오!재미동 아카이브에 구비하고 있는 DVD를 특별하게 골라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년 6회에 걸쳐 매회 5편씩의 영화를 골라 추천해주는 코너!

추천 DVD

대중노선버스 색깔이 보라색인 광경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보라색이라니! 그 정신 사나운 색깔을 일률적으로 칠하고 대로를 활보하던 노선버스가 불과 이십여 년 전의 서울에 있었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 속에서 그 광경을 보더라도 놀라기 보다는 반가울 것이다. 그것은 서울시의 사료로서 대중노선버스의 도색 지침 자료를 얻게 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감흥을 준다. 자신의 생애가 어느새 역사가 되어 있는 일은 슬프거나 안타까운 것이 아니다. 이삼십년 전의 기억이란 게 존재하지 않거나 별 거 있을 리 없는 젊은이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경험이며, 나이 마흔은 얼추 지나야 가까운 역사로서 자신의 생애의 한 시기를 떠올려보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이번에는 한국 영화의 7,80년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오래된 영화들을 골라보았다. 우리가 흔히 오래된영화들을 취급하는 방식은 꽤나 조촐하다. 특정한 연구의 목적이 있거나 마니아적 감성이 있지 않는 한, 흥미롭지 않아도 꾹 참고 봐야 아는 척 할 수 있는 고전영화라든가, 마치 판타지처럼 역사에 거리감을 부여하는 시대극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겨우 2,30년 전의 가까운 역사는 기억에 생생한 경험으로 살아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과 결합하면서 흥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나의 오래된 기억을 일깨우는 것은 오래된 것에 숨을 불어 넣는, 그야말로 간단히 회춘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영화사에서 7,80년대는 군사정권이 지속되면서 소위 3S(Screen, Sports, Sex) 정책으로 대중문화를 억누르고 대중의식을 통제하려던 암울한 시기였다. 티비에서 여가수가 거짓말이라고 노래해도 잡혀가고, 술집에서 다함께 고래 잡으러 가자고 노래를 해도 잡혀갔다. 그래서 대중문화가 다룰 수 있는 소재의 폭도 협소했다. 그런 와중에 양산되던 것이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학원물이었다. 소설도 그랬고 영화도 그랬고, 그런 소설을 영화화하는 일도 빈번했다.

1978년의 <우리들의 고교시대(김응천, 문예송, 석래명 감독)>는 당시 학원물로 이름을 떨치던 이름들이 옴니버스로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70년대 청춘영화의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배우들, 이승현, 김정훈, 진유영, 강주희, 김보연 등이 대거 출연하고 있다. 지금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엄마 역할로 자주 나오는 배우 김보연이 여고생을 연기하던 시절에는 남녀가 빵집에서 빵과 우유를 앞에 놓고 데이트를 했고, 좀 사는 집에는 입주 가정교사가 있었으며, 한복을 입은 어머니가 남편과 아들들의 아침식사로 빵을 차려주는 모습이 상류층의 단면으로 보이기도 했다.

1981년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원세 감독)>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의 으뜸으로 꼽히곤 하는 조세희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소설을 읽지 않았어도 영화 자체로 시대의 정서를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며, 80년대 암울한 시기에도 이렇게 품격이 있는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것에 가슴이 뛸 것이다. 노면전차가 다니던 서해염전마을의 간이역에서 난장이가 연주하는 나팔에 맞춰 춤을 추는 늙은이의 장면은 마치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 영화들처럼 흥겨운 음율 속에 내포된 한없이 비극적인 정서를 느끼게 한다.

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해마지않는 영화배우인 안성기가 불행한 난장이의 큰아들로 나온다. 그는 80년대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얼굴이었다. 앞으로 소개할 영화들에도 그는 다양한 캐릭터로 그의 전성기를 보여주고 있다. 1986년의 <기쁜 우리 젊은 날(배창호 감독)>에서 안성기는 착하지만 쑥맥이고, 공부는 잘해도 어리바리한 영민이라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이 영화는 전적으로 영민과 혜린의 연애 이야기이다. 살짝 지나치게 되면 스토커가 되고 말 것 같은, 우둔하리만치 지고지순한 순정을 보여주는 영민은, 혜린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화려해 보여도 속에는 허전함이 가득한 혜린으로 미모의 절정을 보여주는 황신혜가 나오는데, 이 영화는 비록 밋밋한 스토리일지언정 아련하고 여운 있는 화면으로 담아낼 줄 아는 감독의 힘이 두 배우의 매력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1988년의 <칠수와 만수(박광수 감독)>의 안성기는 가족사 때문에 꿈꾸던 화가가 되지 못하고 가난한 극장 간판장이로 살고 있는 만수로 나온다. 만수를 의지하며 따라다니는 껄렁한 청년 칠수에는 박중훈이 나오는데, 가깝게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라디오 스타(2006, 이준익 감독)>에서, 그보다 더 전에는 <투캅스(1993, 강우석 감독)>에서 보았던 안성기-박중훈 버디 무비의 원조인 것이다. 광고탑 위에 올라서 영문을 몰라 하는 칠수와 만수, 그리고 건물 밑에서 칠수와 만수를 향해 온갖 경고와 회유를 던지는 사람들의 대치. 저런 어이없는 상황이 현재에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라도 가능하지 않을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엄중한 주제를 코미디로 잘 숙성시켰기 때문에 웃으면서 볼 수만은 없는 가슴 아픈 장면이다.

8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졌다고 외쳤고, 노동운동의 고양과 정치의식이 다변화로 영화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확연하게 부상했다. <칠수와 만수>는 노동운동으로 오인 받은 칠수와 만수의 해프닝 속에 민중들이 처한 모순된 생존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면, 1989년의 <! 꿈의 나라(장산곶매 제작)>는 조직적이며 목적의식적인 영화 제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주된 무대는 동두천이지만 실은 80년 광주항쟁을 다루고 있다. 지금에야 805월의 광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며 그것을 다룬 장편영화도 화제 속에 개봉되곤 했다. 그러나 89년도에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랐다. 영화제작소 장산곶매는 영화로는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새로운 집단창작의 방식으로 만들었던 단체였으며, 당연히 정상적인 배급 통로를 갖기 힘들었다. 아마도 여기 소개된 다른 영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질감의 영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존재는 영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과 동시에, 영화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혀주면서 영화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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