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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 : 이민화 (독립영화 감독, 2022년 ‘언더그라운드 플러스’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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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오!재미동에서 영화를 배운 이민화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오!재미동과 함께한 지난 시간, 그리고 그 공간이 저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 줬는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처음 오!재미동을 알게 된 건 2022년,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인 ‘언더그라운드 플러스’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저는 회사에서 17년째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평생의 꿈이 영화감독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긴 했지만, 제가 직접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감독들은 아예 처음부터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영화감독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영화 전공을 하지 않아도 일반인에게 영화를 알려주는 곳이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부터 저는 영화 제작 교육들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저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우연히 오!재미동의 ‘언더그라운드 플러스’ 모집 공고를 보게 됐습니다. 공고문의 교육 대상에는 이런 문장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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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번 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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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장을 보는 순간, ‘아, 이건 나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다큐를 배우고 싶었지만, 영화에 대한 아무 지식이 없다 보니 극영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알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시작하기가 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큰 결심을 하고 지원하려고 했는데, 지원 서류 중에 ‘시나리오 제출’이 있었습니다. 저는 시나리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관련 책 두 권 정도를 정독하고, 한 달 동안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그렇게 서류에 합격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어떤 회사 입사 면접보다 열심히, 그리고 치밀하게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일반 회사원의 일상에서는 심장이 두근거릴 일이 크게 많지 않은데, 이 시기부터 심장도 많이 두근거리고 열정도 생기고,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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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동안 ‘언더그라운드 플러스’ 수업을 들으면서 영화 제작에 필요한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강의뿐 아니라 배우와 소통하고 협업하는 법을 배웠던 배우 특강, 콘티 특강, 기본적인 촬영 특강, 편집 특강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 안에 극영화 제작에 필요한 핵심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 7명의 학생이 각자의 작품을 만들면서 서로 의논하고 든든하게 기댈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 나가면 제가 제일 초보이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컸지만, 그럴 때마다 동료들에게 연락해서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동료의 작품에 스태프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 제 영화에 두 명의 동료가 미술감독과 보조 출연으로 와주었고, 저는 그 동료의 작품에 PD와 스크립터 역할로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 현장에 나가는 것 자체가 큰 공부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영화 제작에는 어쩔 수 없이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되는데, 오!재미동의 여러 지원 덕분에 제작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장비를 대여해줬고, 회의를 위한 공간을 사용하려면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극장과 커뮤니티룸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콘티 회의나 대본 리딩 등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남순아 감독님이 담임선생님처럼 각 학생의 영화가 잘 완성될 수 있도록 누구보다 세심하게 고민해주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또, 수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뒤에서 세심하게 노력해 주신 오!재미동의 이훈재 대리님이 PD처럼 그 역할을 잘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든든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작품 완성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의 마지막은 ‘상영회’였는데요, 그 상영회 날이 마감의 역할을 해주어 아주 짧은 기간 안에 첫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극장에서,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첫 상영과 GV를 했었습니다. 이 과정을 마친 뒤, 혼자 영화를 준비하면서 오!재미동 교육 프로그램의 장점들이 더욱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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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저는 자연스럽게 ‘나의 첫 다큐멘터리’라는 오!재미동의 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숍도 듣게 되었습니다. 다큐는 극영화보다 쉬울 줄 알았는데, 다큐도 너무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손경화 감독님이 짧은 기간 동안 다큐멘터리 제작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잘 알려주셔서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오!재미동에서 대여한 장비를 들고 주말마다 이곳저곳을 촬영하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다큐멘터리 과정이 끝난 이후에도 꽤 오랜 기간 장비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차기작품을 촬영할 때도 오!재미동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즈음부터 저는 자주 오!재미동의 홈페이지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어떤 수업이 있는지, 어떤 전시가 열렸는지,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지, 내가 찾는 희귀한 영화가 아카이브에 있는지, 오늘 함께 발제하시는 송경원 편집장님의 《영화구경꾼들》은 이번엔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꼼꼼하게 찾아봤습니다. 항상 찾을 때마다 하나 이상은 건졌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앞으로도 만들고 싶은데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기에 오!재미동의 프로그램들을 통해 계속 지식을 채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재미동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 중 ‘오!마이 클래스’라는 것도 있는데요, 시민이 클래스 메이커가 되어, 관심 있는 주제로 직접 수업을 여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주제로 ‘오!마이 클래스’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다음 영화로 구상 중인 내용이 ‘대만 감독 허우 샤오시엔을 덕질하다 보니 아빠의 인생이 궁금해졌다.’라는 이야기인데, 이 ‘오!마이 클래스’에서의 경험이 제 차기작 구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지점에서 오늘 꼭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많은 경험들은 제가 크게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졌던 일들입니다. 저도 모르게 무언가를 선택하고, 자연스럽게 강의를 듣고, 무언가를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오!재미동만의 장소성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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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미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나도 이것을 해볼 수 있겠다.’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우연히 영감을 받는 그 모든 과정은 이 공간이 있어야만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교육을 받으러 이곳에 오면 항상 반가운 얼굴들을 만납니다. 아는 감독님들을 우연히 만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 어떤 작업하시죠?”라고 묻고, 그 대화 속에서 제 고민과 작업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용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오!재미동에서는 그런 우연과 접점들이 끊임없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저에게 오!재미동은 학교 같으면서도, 사실은 놀이터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아이와 금세 친구가 되고, “내일 또 봐!” 하고 말하며 헤어지던 그 시절처럼, 오!재미동도 저에게 늘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오!재미동의 폐관을 앞두고, 10년 전쯤에 제가 겪었던 일을 떠올려봤습니다. 제가 자주 가던 동네 카페가 문을 닫았을 때였어요. 퇴근하고 늘 들러서 커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엔 저처럼 점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그 공간이 사라지고 나니,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사실은 연락처도 알고, 집도 아는데 일상이 바쁘다 보니 프로젝트를 함께하지 않는 이상 만나기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바로 일주일 전쯤, 그 카페에서 자주 보던 친구를 10년 만에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그 순간, 이 공간이라는 것이 사라진 뒤에 생기는 그 ‘구멍’이 얼마나 컸는지 실감을 하게 됐습니다. 오!재미동의 종료 소식이 이 공간의 종료를 결정한 사람들에게는 그냥 하나의 행정적인 변화일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에게는 기억의 한 조각, 한 시기가 잘려 나가는 일이고 친구와 동료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재미동은 저에게 학교였고, 놀이터였고,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첫 번째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것은 단지 영화를 만드는 법 뿐만 아니라 ‘시작해도 괜찮다’는 확신, 그리고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각이었습니다. 오!재미동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시간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이곳이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이곳 덕분에 연결된 이야기들이 다시는 같은 방식으
로 생겨날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공간이 남긴 흔적이 어떤 형태로든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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